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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 연 명 : 전주시립교향악단 제232회 정기연주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 공연일시 : 2018년 11월 28일(수) 오후 07:30
  • 공연장소 :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연지홀
  • 티켓금액 : S석 : 10,000원 / A석 : 7,000원
  • 할인정보 : 학생(대학생포함)할인 30% 예술인패스할인 30%
  • 주최 : 전주시
  • 주관 : 전주시립교향악단
  • 공연문의 : 063-274-8641


학생(대학생포함)할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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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지   휘 _ 최 희 준
지휘자 최희준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지휘과에서 디플롬과 최고연주자 과정(Konzertexamen)을 졸업하고,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개교 이래 최초로 지휘과 최고연주자 과정(Meisterklasse)을 졸업하였다. 그는 2003년 독일 전 음대 지휘 콩쿠르(Deutsche Hochschulwettbewerb)에서 심사위원 전원만장일치로 1위, 2005년 바트 홈부르크(Bad Homburg)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최희준은 그간 베를린 심포니(Berliner Sinfonie Orchester), 예나 필하모니(Jena Philharmonie), 카셀 (Staatsorchester Kassel),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isches Staastsorchester), 라인란트 팔츠(Staatsorchester Rheinland-Pfalz) 등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뮌헨 국립 가극장, 하이델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안나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한 다수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였고 라인스베르크 궁 가극장에서 Joern Arnecke의 Drei Helden (세 영웅)을 초연하며 베를린의 주요 일간지인 Berliner Morgenpost로부터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지휘”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오더-슈프레(Oder-Spree)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총감독 및 지휘를 맡았으며, 작센 주립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서 다수의 오페라와 발레를 지휘하였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천, 대전, 광주, 대구시립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 하였고, 제41회 난파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양대학교 지휘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2월 전주시립교향악단 제7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피 아 노 _ 한 영 란
일찍이 6세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8세부터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13세에 첫 협연을, 14세에 첫 독주회를 가졌고 중학 재학시절에는 이미 그녀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1971년 삼익악기가 주최하는 제 1회 삼익 피아노 콩쿨에서 특상을 받은바있으며 그 후로 음악협회콩쿨, 중앙음악 콩쿨, 동아음악 콩쿨을 석권하였고 서울예고 정기연주회 및 연세대학교 정기연주회에서도 협연하였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 Freiburg 음대에서 A. Marchand을, Saarbrucken 음대에서 A. Corrot의 살아 있는 마지막 제자 J. Micault를 사사하면서 Solisten Examen(최고 연주자 과정)을 이수하였다.
유학기간 중 1983년 이탈리아의 세니갈리아 국제 피아노콩쿨과 1985년 비옷티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하였으며, G. Sebok, A. Foldes, G. Opitz, M. Ponti, V. Perlemutter 등의 마스터클래스를 수료하였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그리이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독주회를 가졌으며, 방송녹음도 하였다.
건반 위의 시인이라는 평을 듣는 그녀는 1991년 귀국 후 수십 차례 독주회를 개최하였으며, 졸리스텐 앙상블, 피아노 학회, 쇼팽협회의 연주회, 인천시향, 서울 신포니에타, 성남시향, 진주시향, 원주시향 KBS 교향악단과 협연, 유림 앙상블, 코리아나 챔버 등 수많은 실내악단과의 연주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KBS에서 제작한 「한국 연주자」 솔로 CD음반을 녹음하기도 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program

W. A. Mozart / Piano Concerto No. 17 in G Major, K. 453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작품. 17 G장조, k. 453
Ⅰ. Allegro 
Ⅱ. Andante
Ⅲ. Allegretto

INTERMISSION

D. Shostakovich / Symphony No. 8 in c minor, Op. 65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8번 c단조, 작품. 65
Ⅰ. Adagio - Allegro non troppo
Ⅱ. Allegretto
Ⅲ. Allegro non troppo
Ⅳ. Largo
Ⅴ. Allegretto



program note

W. A. Mozart / Piano Concerto No. 17 in G Major, K. 453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작품. 17 G장조, k. 453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17번은 1784년 작곡된 6곡의 연작 가운데 네 번째 곡이다. 이 곡은 제14번 협주곡과 함께 모차르트의 피아노 제자였던 ‘바브바라 폰 플로이어’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그리고 조성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유일하게 G장조를 취했다. 또한 이 곡은 관악기의 활약이 많아 관현악의 선율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 효과는 악장마다 나타나는데, 1악장의 경과부에서 독주 피아노가 선율적, 리듬적으로 장식하는 음형을 뒷받침하는 관악기의 움직임이 그렇고, 2악장에서도 오보로 시작되는 명상적인 주제를 관악기들이 이어가는 부분, 3악장에서도 목관악기들의 역할이 적소에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이 곡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제3악장에 변주곡을 사용한 점이다. 모차르트가 협주곡에 변주곡을 사용한 것은, 1782년에 작곡된 론도 K.382(잘츠부르크 시대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의 피날레 대체 악장) 이후 이 곡이 처음이다. 초연은 1784년 6월 13일 빈 근교의 디플링에서 '플로이어'의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연주시간 : 약 30분)

1st Allegro제1악장이 행진곡풍의 도입부로 시작되는 것은 전작과 같다. 제1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점음표 리듬 부분에서 음 높이를 바꾸고 트릴을 덧붙이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줌으로써 곡의 분위기의 변화를 꾀한다.제2주제는 오케스트라가 으뜸조로 끝나면 피아노가 첫 주제를 연주하여 제2제시부가 시작되는데, 피아노의 장식적인 아르페지오에 이어 관악기가 이것을 주고받는다. 발전부는 피아노의 셋잇단음표 펼침화음이 이어지고 4분음표로 상행하는 관악기의 펼침화음에 급격한 화성변화를 거쳐, 피아노의 새로운 주제 재현이 이어진다. 후반부는 카덴차를 거쳐 마감된다. 2nd Andante제2악장은 반음계 진행이 두드러진 명상적인 악장이다. 현의 개시에 이어 오보가 명상적인 주제를 내놓으면 목관이 이것을 받아 나가다가 피아노가 아주 조심스럽게 이어진다. 발전부는 분방한 리듬을 가진 피아노의 경과부에 의해 c#단조 영역까지 도달하는 조옮김을 보여준다. 곡은 후반으로 가면서 카덴차가 이어진 후 조용히 마친다. 
3rd Allegretto제3악장은 변주곡 형식이다. 주제와 5개의 변주에 프레스토의 피날레가 이어진다. 그 주제는 찌르레기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곡은 오케스트라가 지시하는 주제의 제시 후 피아노에 의한 8분음표의 제1변주, 피아노의 셋잇단음표와 오케스트라에 의한 제2변주, 개략적인 화성진행으로만 이루어진 제3변주, 같은 으뜸음의 단조에 의한 제4변주, 오케스트라의 총주 부분과 독주 피아노 부분을 대조적으로 처리하는 제5변주를 거쳐 피날레에 도달한다. 그리고 새로운 소재에 의한 프레스토는 변주곡 주제를 포함하지만, 마치 오페라의 피날레처럼 크고 호방하게 하여 곡을 마친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y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1975)


페테르스부르크에서 기사 집안에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다. 11세 때부터 글랴세르(Glyaser) 음악 학교에서 정규로 배우고, 1919년(13세) 페트로그라드 음악원(PetrogradConservatory)으로 옮겨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1925년의 졸업 작품 「교향곡 제1번」은 그 현대적인 감각과 풍부한 색채 감각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모으면서 ‘러시아가 낳은 최초의 천재’, ‘현대의 모차르트(오스트리아)’ 등으로 불리며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졸업 후에는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는 한편, 구소련 현대 음악 협회의 지도자로서 서구의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 영향을 받은 몇 개의 작품을 완성했다.당시의 작품으로는 고골리(Gogol’)의 원작에 의한 오페라 「코 Nos」(1928), 발레 음악 「황금시대 Zolotoyvek」(1930) 등이 호평이었다. 또한 영화 음악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는데, 이 무렵부터 소련 음악계에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책이 수립되고 민족적인 형식과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가진, 이해하기 쉽고 건설적인 음악이 요구되었다. 1936년(30세)에는 이 견지에서 그의 형식주의적 작풍 경향이 비판을 받고 창작 태도의 변경을 요구받았다. 쇼스타코비치(러시아)는 그 이후 철저히 자기비판을 하고, 그 대표적 걸작인 「교향곡 제5번」, 「교향곡 제6번」(1939)을 완성하여 구소련 건국 20주년 기념에 발표하여 절찬을 받았다.1937년부터 1941년까지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를 지냈는데, 이 동안에 명작 「피아노 5중주곡」(1940)으로 제1회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1941년(35세) 독 · 소전이 일어나자 그는 지원하여 레닌그라드 방위의 제1선에 섰고, 이 경험을 살려서 쓴 「교향곡 제7번」(1941)에 의해 재차 스탈린상을 받았다. 1943년부터 1948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서 후진을 지도했으며 1945년(39세)에는 「교향곡 제9번」을 발표했는데, 그 신고전주의적인 양식은 ‘타락한 서양 부르주아지의 형식주의’라 하여 지다노프 비판의 표적이 되어 쇼스타코비치(러시아)는 또다시 자기비판을 했다.이윽고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성악곡)와 영화 음악 「베를린 함락 PadeniyeBerlina」(모두 1949)에 의해 세 차례 스탈린상을 수상한 이후는 창작 활동과 함께 사회 활동가 · 평론가로서도 눈부신 업적을 거두었다. 1952년(46세) 합창 모음곡 「10개의 시」에 의해 네 번째의 스탈린상을 수상하고 1953년에는 「교향곡 제10번」의 평가를 둘러싸고 평론가, 작곡가의 대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다시 1954년에는 창작과 사회 활동의 양면의 공적에 의해 세계 평화 의회로부터 국제 평화상을 받았다.쇼스타코비치(러시아)의 음악은 러시아 예술 음악의 전통적 과제인 민족적인 내용과 서구적인 형식이라는 두 개의 요소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어 갔다. 그 작풍은 종종 형식주의로의 경향을 강화해서 비판을 받아 왔는데, 많은 걸작을 낳은 러시아의 최대 작곡가도 또한 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그 밖에 「피아노 협주곡 제2번」(1957), 「바이올린 협주곡」(1947), 「첼로 협주곡」(1959) 등이 있다.


D. Shostakovich / Symphony No. 8 in c minor, Op. 65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8번 c단조, 작품. 65

교향곡 8번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쇼스타코비치의 '전쟁 교향곡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이 곡은 그리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데, 방대한 규모에 비해 외적인 연주 효과가 크지 않고, 내용 면에서도 모호하거나 부담스런 면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연구가들은 이 곡을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꼽는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을 쓴 것은 1943년 여름이었다. 독-소 전쟁이 만 2년을 넘기도 있던 무렵, 전세가 역전되어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군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폴란드까지 독일군을 추격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소련이 승기를 잡는 시점이었다. 당연히 소련 국민들과 정부는 쇼스타코비치가 이런 희망찬 분위기에 어울리는 신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해 가을, 모스크바에서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초연된 교향곡 8번은 그들의 기대에 완전히 반하는 작품이었다. 장대한 첫 악장부터 시종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고, 넷째 악장에 위치한 라르고의 암울한 악상이 전편을 지배하며, 마지막 악장의 마무리 또한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쇼스타코비치는 파시스트의 편"이라고 불평했다. 다행히 교향곡 7번의 세계적인 명성 덕분에 공개적인 공격은 피할 수 있었지만, 당국이 애써 '스탈린그라드 교향곡'으로 명명한 교향곡 8번은 1956년까지 비공식적인 금지곡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왜 그 시점에 이런 교향곡을 썼던 것일까? 솔로몬 볼코프의 책 [증언]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교향곡들에 대해서 '묘비'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스탈린 정권의 압제와 전쟁의 와중에 희생된 무수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헌사였다는 뜻이다. 이 교향곡 8번도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레퀴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쇼스타코비치는 승전의 분위기를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스탈린 정권을 보면서 결코 '낙천적인 교향곡'은 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전곡은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악장이 전곡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마지막 세악장은 단락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1악장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느린 박자로 진행되는 앞뒤 부분은 비통한 느낌으로 가득하고, 빠른 박자로 진행되는 중간부에는 금관이 포효하는 격렬한 클라이맥스가 놓여있다. 이 악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강렬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선율은 '운명의 동기'라 불리기도 하는데, 특히 그 안에 포함된 2도 간격의 음형이 전곡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후반부에서는 잉글리시호른이 서정적인 모놀로그를 연주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다.

2악장은 '스케르초의 요소를 지닌 행진곡'으로 파악되며 어딘지 풍자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3악장은 비올라 파트가 집요하게 새기는 4분 음표 리듬이 전체를 지배한다. 그 위로 관악기의 비명과 짧고 강한 화음 타격이 더해지고, 중간부에선 씩씩하면서도 우스꽝스런 행진곡이 등장한다. 기계적이면서 난폭하고 갈수록 흥분이 고조되는 이 악장은 전쟁의 묘사, 혹은 '소비에트 체제에 의한 인간성의 말살'로 해석되기도 한다.

4악장은 앞선 악장의 작은북 연타가 이어지다가 히스테릭한 총주가 터져 나오는 두 마디의 전주로 시작되는데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쓰였다. 전주에 이어 등장하는 주제가 저음부에서 반복되는 가운데 11개의 변주가 차례로 펼쳐진다.

5악장은 억압에 신음하는 듯한 그 흐름이 마치 해체되듯 잦아들면, 바순 솔로가 조심스럽게 주제를 꺼내놓으며 파스토랄 풍으로 시작된다. 이 피날레 악장 역시 1악장처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에는 템포 배치가 반대다. 즉 앞뒤 부분은 빠르고 중간부는 느린데, 중간부에서는 1악장에 나왔던 두려운 포효가 재현된다. 반면에 앞뒤 부분은 긍정적인 기운을 머금고 있는데, 다만 전곡의 마무리는 개운치 않고 모종의 여운을 남긴 채 사라져가는 식으로 처리되었다. (연주시간 : 약 65분)